25시 (The 25th hour)
25시 (The 25th hour)
독서록
2012-08-02 10:40:57
지은이: C. V. Gheorghiu (콘스탄틴 버질 게오르규) 1949년 작
출판사: 효리원 (2006년 출간)
주요 인물
요한 모리츠 - 루마니아 판타나 출신의 청년. 도미하려다 여자친구를 보호하기 위해 고향에 머루름. 전쟁이 발발하고 자신이 한 일과는 상관없이 출신, 태생의 정보에 의해서 13년간의 수용소 생활.
크루가 사제 - 판타나의 그리스정교회 사제. 모리츠의 후원자. 공산주의자에 의해 처형당하지만 아나스타샤에 의해 생명을 구함. 그 역시 수용소 생활 중 사망.
트라이안 크루가 - 크루가 사제의 아들. 변호사이자 작가. 전쟁 중 망명 생활을 하다가 적국의 공무원이었다는 이유로 전후 연합군 수용소에 갇힘. 25시라는 소설 구상. 기계화, 비인간화의 문명속에서 절규.
수산나 - 모리츠의 아내. 연약하지만 끝내 아이들을 지키고 ㅁ리츠와 재회하게 된다.
아나스타샤 - 모리츠의 어머니. 속물같지만 가정과 사제를 지켜내는 강한 여인.
엘래오노라 - 트라이안의 아내. 유대인, 엘리트, 잡자시를 소유한 주유한 사장이었으나 전쟁 후 남편과 망명, 결국 전후 수용소에 수감된다.
요르구 요르단 - 수산나의 아버지. 사람보다는 말을 더 사랑하고 전쟁에 투신하는 절대악.
마르쿠 골든버그 - 판타나 출신의 법학자. 유대인으로서 수감되지만 탈출, 소비에트(소련군)의 간부가 되어 돌아와 고향 사람들을 재판, 처형.
줄거리
판타나의 순진하고 가난한 청년 요한 모리츠는 미국으로 가서 돈을 벌어 와 고향에서 땅을 경작하고 사는 꿈을 꾼다. 바로 내일 도미하는 날이지만 애인인 수산나의 아버지인 요르구 요르단이 딸의 연애 사실로 격노해 아내를 폭행, 사망에 이르게 하고 수산나는 도망하여 모리츠의 집으로 도망하게 된다. 모리츠는 크루가 사제의 도움으로 집을 얻어 수산나와 아이들을 낳고 살게된다. 전쟁이 발발하고 유대인으로 오인받아 수용소 생활을 하게 된다.
기계"가 인간 생활을 지배하는, 점점 비인간화되어가는 사회를 그린 소설 25시를 구상하는 트라이안. 산소 측량계가 없었던 시절에 잠수정은 그 대신 흰토끼를 이용했다. 흰토끼가 죽으면 잠수정 안의 사람도 위험한 상태인것이다. 트라이안은 이 흰토끼, 증인의 역할을 한다.
루마니아의 수로와 성곽을 건축하던 모리츠는 함께 일하던 유대인 몇과 헝가리로 탈출. 성공한다. 하지만 거기서 함ㄲ 탈출한 유대인들에게 버림 받고 신분이 불분명한 상태여서 다신 수감된다. 헝가리는 독일에 처음엔 저항하지만 전쟁을 피하기 위해 수용소의 수감자드를 내주는 조건으로 자국을 방어한다. 독일로 가게 된 모리츠. 우수한 유전자 보유자로 한 장교의 눈에 띄어 독일 군인의 신분을 얻게 된다. 거기서 독일군 간화원 힐다와 결혼하여 아들과 함께 산다. 보초병으로 일하다가 수감자였던 프랑스인들과 사귀게 되고 그들과 함께 탈출한다. 종전의 분위기때문이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적국의 군인이었다는 이유로 다시 수용소 생활 시작.
트라이안은 수용소의 비안간적인 대우를 고발하는 탄원서들을 써나간다ㅏ. 문학으로는 '시민'이라는 대상에게 뜻을 전달할수 없다는걸 깨닫기 때문이다. 하루 500칼로리릐 식사만으로 서서히 죽어가는 수감 생활, 정치적 이유만으로 수감된 부당함등을 고발한다.
독일군의 병원에서 발견된 크루가 사제 또한 수감되어 독일군에 협조한 사제로 오인 받는다.
단식으로 저항하던 트라이안은 비인간화에 더이상 참지 못하고...
모리츠는 결국 석방고, 독일에 머물고 있던 수산나와 재회. 하지만 18시간만에 다시 체포된다. 이번엔 동부 유럽 출신이라는 이유에서다. 소련과 대치하고 있는 미군의 결정이다.
이 책의 주장
무정부주의의 주장이 이런건가 한다. 사람이 개인으로 존중받지 못하고 설상의, 혹은 대표적인 몇 가지 정보만으로 평가받는 상태. 관료주의. 그 이유는 기계화에 있다고 본다. 기게의 생리에 맞춰져가는 인간. 희생자는 있지만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소감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의 장면들이 떠우르며 재밌게 읽었다. 쉽게 읽히는 소설이다. 하지만 내용은 무겁다. 어느 순간 2차 대전이 그리 먼 옛날 이야기가 아니란것을 느끼게 됬다. 아직 그 흐름 위에 내가 놓여있다는것.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에 질문을 던지는 일. 잠수정의 흰토끼 역할을 한 트라이안을 보며 작가가 하는 일에 대해서도 배웠다. 1964년에 영화화 되었다는데 한 번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고 현대에 다시 만들아져도 좋을것같다.